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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 단편

[노조미조레]파랑새의 날개를 부러뜨리는 법

개인적으로는 원작의 캐릭터 붕괴를 좋아하지 않아서 팬픽은 쓰지 않는편이에요. 그래도 인생백합 상위권에 드는 리즈와파랑새가 극장에서 내려온 기념으로 아쉬운 마음에 써 봤습니다. 대화는 최대한 배제했으니 편하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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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실 창가 한 켠에 자리잡은 조그만 수조. 노란색의 복어가 한가로이 헤엄치고 있는 너머에는 새파란 하늘과 환한 햇살이 반짝인다. 수조와 그 너머의 풍경을 아련하게. 조금은 무기력해 보일 정도로 응시하던 소녀. 요로이즈카 미조레는 탁자에 반쯤 기대있던  몸에 힘을 빼며 그대로 엎드렸다.

여전히 저릿한 오른손의 손가락들은 마디마다 두껍게 부목과 테이핑이 감싸져 있었다. 붕대가 감겨진 왼손의 손목은 불시에 시큰거리곤 했다.

연습이야 당분간 쉬어도 괜찮다. 전보다 더 열심히 하면 되니까. 둔해진 손가락이 통증에만 민감해져도 괜찮다. 미조레는 기다림에 익숙했으니까. 기다리면 언젠가는 돌아온다. 기다리면.

쌓아올린 기대는 의사의 소견에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늘어난 인대와 어긋난 뼈는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짓눌린 신경과 다친 힘줄은 회복해도 악기연주처럼 섬세한 작업은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요로이즈카 미조레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 날, 그 찬란했던 아침.

언제나처럼 함께하지만 어느 때와도 같을 수 없는 등교길.

카사키 노조미와 함께하는 시간.

언제나처럼 경쾌한 발걸음으로 걷는 노조미의 뒤를 따랐던 일을.

성큼 걷는 걸음에 벌어진 격차를 좁히려 발을 재촉했던 행동을.

한 층계 위 난간 너머로 장난스레 웃는 그녀에게 잃은 넋을.

그 모습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 감지 않은 눈에 위태롭던 그녀가 떨어지는 모습을 잡아낸 눈을.

한치의 고민도 없이 뒷걸음질 치며 그녀의 몸을 받아낸 자신의 몸을.

그 댓가로 소중한 두 손과 미래를 잃게 되었다 해도.

요로이즈카 미조레는 후회하지 않았다.

"기다렸지 미조레!"

이제는 언제 어디에 있든 찾아와주는 그녀가 있으니까.
곁에 있기 위해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
설령 좋아하는 미조레의 오보에가 없다고 해도.

자리에서 일어난 미조레에게 노조미가 다가온다. 손은 괜찮은지 아픈덴 없는지 묻고싶은 눈이다. 미조레가 입술을 떼고 말하려는 순간. 노조미는 어색한 미소로 감추며 미조레의 오른손 손목을 조심스레 잡아끈다.

오늘 있었던 소소한 일. 친구에게 들은 농담. 후배들과의 모임까지. 학원 밖까지 이어지던 대화는 부활동 합주의 얘기에 끊기고 말았다.

"그러니까 거기서 타키선생님이! 아.."
"괜찮아."

하지 못했던 말을 할 수 있었다. 충분한 설명은 없었지만 씁쓸한 듯 후련한 듯한 태도에 카사키 노조미는 위안을 받고 만다.

그런 연주를 보고 말았으니 이젠 정말 보내줄 수밖에 없다고. 그것이 카사키 노조미 다운 모습이라고. 밤새 고민한 끝에 미조레의 걱정을 사버렸다. 일부러 가장한 활기는 한순간의 장난에 신의 심술이 보태져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순간의 실수로 다치게 한 소중한 사람이 이번에는 정말 떠나버릴까.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제멋대로인 노조미는 질색이라고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 할까. 들어가지도 못할 병실 앞을 지키다 듣고 말았다.

이제는 정말 떠나면 돌아오지 않을거라며 울어버리는 미조레를. 그것은 생애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천상의 소리였다.

그 날, 카사기 노조미는 선택했다.

병실에 들어가 미조레를 끌어안고 안심시키는 대신 집으로 돌아갔다. 메일을 할 수 없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고 걱정과 죄책감을 가득 담아 전했다. 그것만이 솔직하게 전할 수 있는 진심이었으니까.

카사키 노조미는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권했고 미조레는 권유가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먼저 끄덕였다. 노조미는 오늘도 미조레의 낫지 않은 손가락을 대신한다. 떨어진 자리만큼 멀던 아이스크림 컵은 떠먹이기 좋게끔 나란히 놓여있다. 테이블 한쪽에 의자를 붙여 앉은 두 사람처럼.

새끼 새처럼 입을 벌리고 민트초코를 받아먹으며 볼을 붉히는 요로이즈카 미조레. 매번 부끄러워하면서도 절대 그냥 집에 가자는 말은 하지 않는 미조레. 이제는 하늘을 그리워해도 돌아갈 수 없게 된 그녀. 손 안에 들어온 행복이 기뻐 지저귀는 파랑새.

"잘 먹었습니다?"
"하하. 왜 의문형이야?"

카사키 노조미는 이제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는다.